여행하는 미스티 @mistytruth
칼 스타드 호텔을 떠나 스톡홀름을 향해 출발했다.
스톡홀름에 도착해서 ‘남강회관’이라는 한국식당에서 오랜만에 한식으로 배를 채웠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은 음식이라기보다 축복이다.
점심을 먹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주변 거리를 걷다가 잠시 길을 잃어 국제미아가 되지는 않나 싶었지만 다행스럽게 다시 일행을 만나 안도했다.
거리에 있는 뜻 모를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난생처음 스톡홀름 거리를 걷는 재미에 빠졌다.
식당 주변 거리 풍경
스톡홀름에서의 첫 식사.
며칠 같이 다니다 보니 다른 팀 사람들과 친해져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버스로 잠시 이동하며, 특이하게도 스톡홀름 시내에는 방공호와 지하병원이 갖추어져 있고 산 밑에 지하 격납고까지 만들어 두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는 복지국가이며 평화로운 스웨덴이 역사적으로 한 때 덴마크의 속국이었다거나 러시아와의 전쟁을 치른 경험이 이런 시설을 갖추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이곳저곳을 돌다가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왕궁 앞에 멈춰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교대식을 지켜보았다.
여자 경찰이 선두에 서서 교대식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교대식이 끝나가는 광장 바닥에는 근위병들이 탄 말이 생산해놓은 말똥이 나동그라져 있었지만 굳이 말똥을 치우고자 하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광장(Stortorget) 주변으로 왕궁은 아주 넓게 지어져 있고, 칼 구스타프 왕(1973년 9월 15일 즉위 ~ 현재)은 인기가 좋아 생일이나 축하일에는 광장에 선물을 가져온 사람들로 꽉 찬다고 한다.
대광장은 이 나라의 역사를 증언해 주는 곳으로 1520년 이곳을 점령한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의 왕을 비롯하여 많은 귀족과 반동세력 92명을 이곳에서 처형하여 '피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우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했다.
당시 청년이었던 왕자는 덴마크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다 농부의 볏짚에 숨었는데 병사들이 수색을 위해 창으로 볏짚을 찌를 때 몸을 두 곳이나 깊게 찔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위기를 모면한 그 왕자는 결국 왕위에 오르고 기어이 덴마크를 몰아냈다고 한다.(2007년 8월 16일 중앙일보에 덴마크는 바이킹 시대에 조상들이 이웃국가를 침공했던 것을 사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대광장을 뒤로 하고 스톡홀름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걸었다.
많은 상점들이 양쪽으로 들어차있는데 고위도 지방이라 눈이 많이 내리면 길 아래 깔린 열선이 눈을 녹여준다고 한다.
구시가지를 빠져 나와 스톡홀름의 시내를 기웃거리다가 스톡홀름 시청사를 향해 걸었다.
근위병 교대식
성 조지 요한의 동상
피의 학살 때의 우물터 : 스덴의 왕을 비롯하여 많은 귀족과 반동세력 92명을 이곳에서 처형하여 이 광장을 피로 물들여, 광장 중앙에 샘은 "칼마르의 학살장"이라 하고 "피의 대학살" 때에 이 우물에 떨어뜨려 죽이기도 하였다.(사진 오른쪽이 우물터)
대광장 옆의 붉은색 건물. 대학살 때 죽은 92명의 귀족들을 추모하기 위해 같은 수의 벽돌을 창가에 붙여 넣어 만들어진 건물이라 한다.
피의 광장 뒤쪽 구시가지 거리.
구시가지 거리를 빠져 나가며.
구스타프 3세의 기마상. 어쩌다 보니 뒷편이 찍혔다.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다.
- 이 포스팅은 2007년 여름에 친구들, 남편과 함께 했던 북유럽여행을 회상하며 올리고 있습니다.
여행지 정보
● 스웨덴 칼스타드
● 스웨덴 스톡홀름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