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1일 (1)
두려운 마음으로 휴대폰에 깔린 데이팅 어플리케이션 앱을 다시 열었다. 데이트 상대를 찾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용한지는 10여년 정도 되었다. 우울증이 극에 달하는 요즘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며 답답함을 풀곤 한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고 혹 서로 마음이 맞으면 잠자리도 하고 헤어지곤 했는데 그러면 우울한 마음이 달래졌다. 그런데 이 앱을 이용하는 게 갈수록 두려워진다.
“좋은 거 하실래요?” 최근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건다. 좋은 거라니? 대체 이게 뭐길래 사람들이 자꾸 같이 하자고 말을 거는 걸까. 국가가 허용하지 않은 종류의 약물같은 느낌이 든다. 난 마약이 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나도 바보가 아닌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이들은 절대 ‘마약’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은어들을 쓴다. 마약 없이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걸까? 이 앱은 점점 위험한 곳이 되어가는 것 같다. 가슴 속에서 거대한 폭발물이 터진 것처럼 쿵쾅쿵쾅 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린다.
아침 9시. 앱에 접속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앱을 다시 설치했다. 앱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면 두려워져서 앱을 지웠다가, 또 얼마 못가 다시 앱을 설치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전쟁터 같은 일상 속에서 탈출해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이 앱이다. 지웠다 설치했다 지웠다 설치했다를 반복하는 이유다.
“(좋은 거) 비용은 안받을게요. 그냥 모텔만 잡고 기다리세요.” 앱을 설치하자마자 또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 만나만 보자. 만나서 좀 이상한 사람같으면 바로 집에 와야지. 그렇게 서울의 모 모텔로 곧장 달려갔다. 초조하다. 마약을 하게 되면 안되는데, 마약을 하게 되면 안되는데. 운전하며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차라리 사고라도 나서 약속이 어그러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석에 끌린 듯 나는 약속 장소로 가고 있다.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모텔 방을 잡은 뒤 도착했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단다. 숨죽여 상대를 기다렸다. 침을 삼켰다. 꿀꺽 하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타고 귓속에 머물다 사라졌다.
“띵동” 방문을 열어주었다. 건장한 남성 두세명, 그리고 여성 경찰 한명이 우르르 방안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한쪽에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 한명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서 있 있는게 보였다. ‘나에게 마약을 같이 하자고 유인했던 사람이 경찰의 끄나풀이었구나.’ 들이닥친 사람들은 자신들을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라고 밝혔다.
“저는 마약을 하러 온게 아니라, 그냥 데이트 상대를 확인해보러 온거예요.”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변명이었다. 분명 상대는 내게 마약을 같이 하자며 꾀었고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은 채 모텔 방까지 잡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도 마약을 함께 할 수 있음을 예상하고 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경찰은 거짓말 하지 말라며 윽박질렀고 바로 체포하겠다며 겁박했다.
“모든 수사에 협조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찰청 출입기자입니다. 체포되면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됩니다. 모든 수사에 협조할테니 부디 체포만 하지 말아주시고 수사 내용에 대해 비밀만 지켜주십시오.” 나는 마약을 소지하지도 않았고, 내가 마약을 하자며 사람을 꾀어낸 것도 아니다. 마약에 호기심이 강했던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 수사에 협조만 잘 해주면 체포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찰은 수사협조를 대가로 나를 체포하지는 않기로 했다. 경찰과 함께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건물로 ‘임의동행’ 했다. 경찰 조사를 받게 되는 것은 큰 불행이지만 마약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되레 천만다행이다.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상습적으로 마약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고 나오면 된다. 회사에는 어찌저찌 설명을 잘 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순진한 기대가 산산조각 나게 되는 데에는 불과 몇시간이 걸리지 않았다.